사적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16-07-18 (월)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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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취정(任就正) 한국역대인물사전 수록



임취정(任就正)

[간략정보]
• 한자任就正
• 분야역사/조선시대사
• 유형인물
• 시대조선
• 성격문신
• 성별남
• 생년1561년(명종 16)
• 몰년1628년(인조 6)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관련사건인조반정
• 대표관직(경력)예조판서
• 집필자이태진
 
 
[정의]
1561(명종 16)∼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권신(權臣).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진화(進和). 명필(明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승지 윤(尹)이고, 아버지는 국로(國老)이며, 어머니는 한원(韓垣)의 딸이다.

[내용]
1589년(선조 22)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가 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관(史官)이었던 주서 박정현(朴鼎賢), 검열 조존세(趙存世)·김선여(金善餘) 등 4인과 모의하여 사초(史草)를 불태우고 도망한 죄로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선조가 환조(還朝 : 본궁으로 돌아옴.)한 뒤에 관직에 나가기 위하여 애를 썼으나 겨우 외직에 수차 임용되었을 뿐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그 뒤 1599년 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04년 서산 군수를 지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원주부사에 임명되었고, 광해군 재위 때에 그의 형 몽정(蒙正)의 첩의 딸을 후궁으로 들여보내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1613년 형조참의, 1616년 좌승지, 1620년 이조참판·동지경연(同知經筵), 1621년 예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파직되었으며, 그 뒤 1628년 임경후(任慶後)·박동기(朴東起)·이종충(李宗忠)·오현(吳玹)·이후강(李後崗)·안대홍(安大弘)·고경성(高景星) 등과 함께 광해군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인조 실록』의 기록에는 그가 궁액(宮掖 : 궁중의 하인)의 세를 빙자하여 권병(權柄:권력을 이용한 힘)을 농단하고 탐욕스럽기가 그지없어 광해군 때의 권세가였던 이이첨(李爾瞻)과 대등하였다고 한다.
1617년 대북파로서 폐모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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