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및 문헌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16-07-17 (일)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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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세보 (上篇) 무진보 본족보 편수전말

戊辰譜 본 족보편수전말 (本族譜編修顚末)


우리 任氏의 族譜는 朝鮮肅宗朝 때 刊行된 辛酉.丙寅兩譜와 正祖21年(1797)年에 續刊된 丁巳譜가 있는데 특히 丁巳譜는 前記 兩譜의 소략(疏略)한 부분을 크게 보완하여 체제와 내용을 함께 갖추었다는 譜家의 정평이 있으며 위의 三譜는모두 伯仲兩派를 收合한 대동보였다.
그러나 그 뒤 60年 哲宗8年(1857)에 중파에서 간행한 哲宗丁巳譜와 다시 17年후인 高宗11年(1874)에 伯派에서 간행한 甲戌譜는 각기 해종(該宗)의 派譜에 그치고 말았으며 그 뒤 수보할 때마다 누차 大同合譜가 거론되기는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유감천만한 일이라 아니 이를 수 없다.
1982年 많은 宗親들이 제기한 大同譜推進事案이 宗親會總會의 決議로 會長恒準氏의 주관아래 편집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종친회 안에 보소를 설치하여 곧 그 업무를 개시하였다.
1984年 5月 총회에서 전력이 있다하여 不肖 仁光이 외람하게도 恒準氏의 後任으로 중책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편찬업무가 정돈상태에 빠져있었으며 위원회의 正副委員長도 모두 辭退한 難局에 처해 있었다.
실상 무능한 나로서는 너무도 어려운 국면에 어려운 사업이라서 謀免해 보려는 심정도 없지 않았으나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더욱이 공석 중이던 위원장직까지 겸하게 되고서는 개연(慨然)히 용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예산이 탕연(蕩然)한 실정을 감안, 위원회의 기구축소(機構縮小)와 보수(報酬)대폭삭감(大幅削減)을 먼저 단행하고 곧 宗親會事務室도 狹小한데로 이전하여 경비의 절감을 우선 꾀하였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百數十年來 우리 宗族間의 물의와 반목을 빚어왔던 仲派의 政丞公과 司尹公의 序次是非가 작년부터 이미 再演되어 그 兩派의 상당수의 수단이 들어와 있는데도 전혀 편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序次문제에 있어서는 序文에 이미 소상(昭詳0하게 언급되어 있는지라 이를 생략(省略)하거니와 나는 伯仲兩派를 上下編으로 나누어 편집한다는 범례에 의거하여 先上篇 後下篇의 방게를 정하고 나아가 序次問題解決을 위하여 오랜 시일에 걸쳐 중파의 兩派人士와 누차 접촉한 끝에 政丞公派와 司尹公派로 하여금 먼저 小委員會를 구성하고 이에 관계되는 모든 紫蓼를 提出케 하였다. 그리고 나는 譜學에 밝은 伯派人士 몇 분도 함께한 자리에서 解明도 해주고 의견교환도 하자고 要求하여 그 자료도 받고 의견도 교환한바 있다. 그리고 양파의 委員이 합석한 자리에 伯派人士도 동참하여 진진한 검토와 심의로 까지 발전시켜 이 민망스런 분쟁의 한 가닥 실마리라도 풀어보려고 애서 試圖하였다.
그러나 政丞公派는 正祖丁巳譜를 주장하고 司尹公派에서는 哲宗丁巳譜의 序次를 주장하여 도저히 合意를 볼 가망이 없어 최종단계에서 이 모든 資料를 권위 있는 학술기관 또는 史學者에게 의뢰하여 그들의 見解를 들어보자고 제의한바 끝내 拒否되어 몇 해에 걸쳐 기우려온 나의 노력이 마침내 無爲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나의 능력의 한계를 새삼 느꼈으며 이 問題는 다시 후일을 기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깨닫고는 날로 가중되는 資金難의 압박과 납단(納單)한지 4年이나 되는 伯派諸宗의 성화같은 督促으로 부득이 우선 上篇의 出刊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에 나는 나의 무능한 소치로 畢竟 下篇을 동시에 편집해 내지 못한데 대한 自責과 아울러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문제가 언젠가는 兩派의 공동노력으로 정확히 考證, 공정한 判斷으로 반드시 그의 歸正을 볼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제 편집 출간한 上篇六冊은 전술한바 많은 곡절 난 관속에 物力 또한 궁지 하여 체재에 있어 당초 제정한 凡例와는 다소 參差된바 없지 않으나 교정에 보다 嚴正을 기하였고 보귀정와(補遺正訛)에 힘썼고 이를 수 있다. 工役을 마치고 序文은 昌淳氏에게 跋文 및 한글번역문은 昌宰氏에게 부탁 하였다.
이 두 분은 우리 종중에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 서문과 발문이 매우 消詳하는 등 그 밖의 나의 聱言을 빌릴 것이 없으나 그사이 겪었던 事端과 苦哀, 그리고 下篇의 편집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못한 경위에 대략을 스스로 밝히지 않을 수 없어서 서문과 중복되는 사연이 있음을 알면서도 참람함을 무릅쓰고 감히 그 전말(顚末)을 기록하는 바이다.
끝으로 이번 편집에 가장 힘들었던 校正業務를 시종 전담해온 副會長 珌鎬 編輯委員永彬 兩氏와 갖은 고난 속에 애써온 總務位爀君과 그밖에 물심양면으로 각별한 성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僉宗諸賢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리는 바이다.



1988 年 1月


後孫 豊川任氏中央宗親會長 仁光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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