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간행내역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16-07-16 (토)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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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세보 (구) 해주 병인보 (1686)년 해주에서 발간
 
 
  
 

 
 
 
 

해주 병인보(海州)丙寅譜 1686(숙종12) 발문

(해주감영에서 두 번째 발행 했을 때)

 

위의 우리 임씨 족보 약간 권을 백부(伯父) 호군공(護軍公)이 처음 편찬해 놓으신 것을 내가 종형(宗兄) 경창(慶昌)과 더불어 계속해 닦고 다듬어 놓고도 미처 간행하지 못하였는데 신 유년 (숙종7년 서기1681) 에 이르러 종숙(宗叔) 부사(府使) ()씨가 비로소 함경도 정평부(定平府)에서목판(木板)에 새기고 참판 상원(相元)가 그 서문을 지어 권두에 실으니 매우 성대한 일이다. 당시 나는 제부목사(濟州牧使)로 나가 있었으니 정평과의 상거가 수륙 천리나 되는지라 길이 멀어 그 역사를 돕지도 못하고 변란(辯難) 고자 하는 것이 있었는데도 이미 미칠 겨를이 없었다. 다음해 壬戌년 가을에 종숙(從叔) () 종형(從兄) 상원(相元)과 은대(銀臺 승정원의 별칭)에서 모이게 되어 공무여가에 다시 출간해 보려고 꾀한 봐도 있었으니 대개 정평보(定平譜)는 간혹 소략하고 잘못된 곳도 있는지라 바야흐로 서로 서찰을 둘하여 왕복하며 참증(參證)하던 중에 수개월이 못되어 영씨의 별세로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말았으니 한스런 일이다.

나는 이것이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그 참된 면모를 일을 것이 두려워서 드디어 경창 보와 더불어 널리 세첩(世諜)을 상고함은 물론, 예부터 전문(傳聞)해 오는 것도 물으며 수년의 세월을 쌓은 끝에 비로소 이 책을 이루게 되었다.

이 책이 구 본(신유보)에 비해 약간의 교정(矯正)을 가한 바 있으니 생졸(生卒)을 쓴 것은 그 년대를 증명하기 위함이오. 부인의 성씨를 쓴 것은 그 소자출을 밝히기 의합이며 단지 외손(外孫) 만 쓰고 그 후 파(後波)에 미치지 안이한 것은 본종(本宗)을 더 소중하게 다루기 위함이다.

그리고 종파(宗派)의 년대가 분명치 안아서 의심스런 것이 있으면 이를 별록(別錄)에 쓴 것은 이 또한 작사자(作詞者) 의 미더운 것은 미어운대로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대로 전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편집이 이미 탈고(脫稿 )를 보았는데도 즉시 판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한스러워 하던 중 갑자기 황해도 관찰사의 제명(除名)이 있었다.

이는 우리 임씨의 성향(姓鄕)이 마침 내 소관구역 안에 있게 된지라 이 기회를 잃을 수 없다 생각하고는 드디어 모든 종장(宗丈)들이 본도를 안찰하셨을 때의 고사(故事)를 모방하여 도내에 살고 잇는 종인들을 풍천에 회합시켜 선영을 증축하고 구기(舊基)를 회복한 것은 우리의 근본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오. 감영으로 물러와 즉시 이 족보를 출간하여 그 전포(傳布)를 넓힌 것은 전인의 공을 이어 후인들을 면려케 하기 위함이다. 대저 우리 임씨의 유래가 그 세대는 멀고 기록은 소략하여 이를 고증해 믿을 수는 없는 터이라 그 미더운 것만을 전하고 의심스런 것은 차라리 궐해버리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그러나 참판공이 이미 채택하여 서문에 썼으니 이제 와서 군소리는 하지 않겠다.

 

숭정(崇禎) 기원후 병인년 (숙종12년 서기1686) 삼월하순에

후손 황해도 관찰사 홍망(弘望)은 삼가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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