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록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20-04-23 (목)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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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 19世 임도정(任道鼎) 문헌
19世 임도정(任道鼎)1667(현종8)생 1704(경종4)졸

구휘(舊諱)는 道咸)이요, 자는 화숙(和叔)이다.
通德郞 익등(翊登)의 長子이고 만휴당(萬休堂)  謚貞僖公 임유후(任有後)의 孫子이다.
실(室)은 진주강씨(晋州姜氏) 文副使의 딸이다.
조부(祖父) 만휴당공(萬休堂公) 謚貞僖公 諱는임유후(任有後)께서 6歲에 아버지가 타계하니 偏母侍下라 조년(早年)에 등과(登科)하여 대성(大成)할 꿈을 가지고 등과하였다. 偶然하게도 家禍를 당하였다. 하소연도 못하고 官職도 버리고 울진(蔚珍) 山中으로 편모(偏母)를 모시고 우거(寓居)하게 되었다.
仁祖年에 가화(家禍)가 再燃되지말라는 보장(保障) 없으니 子孫들은 登科하지말라는 유훈(遺訓)에 따라 일절(一切) 소 대과(小大科)에는 應試를 아니했다.
祖父 萬休堂公의 유고(遺稿)가 유실(遺失)되기 전에 판각(板刻)을 해야 된다는 생각(生覺)뿐이다. 나무를 求하기가 어려워서 지금의 울릉도까지 가서 판목(板木)할 木材를 가져와서 판각(板刻)에 임하니 그 정성(精誠)은 子孫들에게는 큰 귀감龜鑑)이 된다.
家勢가 餘意치 못함에도 판각은 완성(完成)하였으나 형세(形勢)가 매우 안 좋아서 수질(數帙)밖에 못한듯 하다 전질(全帙)을 소장(所藏)한 곳이나 아직도 1券과 2券을 보지 못하고 있는 萬休堂公의 9代孫 珌鎬는 애석(哀惜)한 마음을 禁치 못하고 있다.
萬休堂집을 발간(發刊)後 道咸을 道鼎으로 개명(改名)한듯하다.
옛 墓地 麗州郡 占東面 完正峴 에 있었는데 直孫 合意下에 西紀1984년도에 천안시 입장면 시장리 산2번지 에 있다.


출처 : 豊川任氏 文憲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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