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관리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16-07-17 (일)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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豊川任氏 18世 통덕랑공 (諱翰登)墓碑銘幷序


  通德郞公諱翰登墓碑銘幷序

公의 이름은 翰登이다. 우리 豊川任氏가 (溫)으로부터 記述하기 始作하여 二世 可珪, 三世 備. 四世 徒, 五世 天裕, 로 繼承하여오다가 六世인 澍가 一二八三年 高麗忠熱王때 慶尙道按察使를 지낸 것이 慶尙道 先生案에 실려 있고 七世 子松은 賊臣 조적을 討平한 功勞로 西河府院君에 封한벼슬이 侍中에 올랐다. 公의孫 九世 球가 漢陽朝에 벼슬 하여參知門下府事가 되었고 十世인 復生은 左通禮에 追贈되었다. 十一世인 長孫은 贈職 左承旨요. 十二世인 訓導 濟는 贈職吏曹參判에 이르렀다. 十三世인 明弼은 南部參奉으로 贈職 左贊成이 되었다. 그의子 十四世인 尹은 進士에 合格하고 文科에 올랐으며 明宗十三年 司諫院 司諫이되고, 全羅御使以後 同 十六年 黃州 牧使가 되었으며 宣祖 三年 冬至府使로 中國北京을 다녀왔다. 牧使公代에 이르러 牧使公 尹과 아우 說과 呂가 모두하고 또한 重試와 拔英試까지 合格하여 兄弟 三人이 大小 九科에 올랐고 說은벼슬이漢城判尹이고 呂는左承旨에이르러 一時에家門의榮光이 世上에 빛났고 이로因하여 高祖 以下 四代의 官職이追贈되었다. 十五世인國老는 號가 竹塢로써 中宗때 生員 進士 兩試에 合格하고 中宗 壬戌年엔 文別試에 合格後벼슬이 官輔國崇祿大夫 吏曹判書,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에올랐고임진왜란中엔 맹활약을 하였다. 室인 淸州韓氏는 貞敬夫人에 追贈되었다. 그 當時부터 政府官僚사이에는 東人西人의派가 생기고 東人은 南인,北人으로갈라졌는데 吏判公 國老는 北人에 가담하였다. 壬辰倭亂 後 光海君 朝에이르러 吏判公의 子 蒙正,就正,守正은 모두大科에 合格 華麗한 官職을 역임하여 一時에 名門으로 世上에 알려졌고 十六世인 公의 祖父,就正은 資憲大夫禮曹判書에 올랐는데 後孫들은 禮判公이라 칭하고 있다. 公의 祖母인 淸州慶氏는 貞夫人이되었다. 공의 伯父 錫後는 進士에 仲父慶後도 進士를 역임하였으며, 公의 父인 十七世인 光後는 鱔公監直長을 지내셨다. 公은 光海君末 生을 公의宅은 二代정종대왕의 十四代孫인 貞石君의 後孫인 全州李氏이며 公께서는 正五品인 通德郞에 追贈되었다. 公의 長男 十九世 道晩은 承政院左承旨에 次男인 道三은 通訓大夫成均館司藝(正三品堂下官)에 三男道萬은 通德郞에 이르렀다 또한 公의 孫인 二十世祥龜도 通德郞에 追贈되었다. 그런데 그 當時 勢力을 잃었던 西人들이 仁祖를 背景으로 光海君을 王位에서 (一六二三年三月十二日光海君在任十五年)밀어내고 以後仁祖政權이 출범했다. 그 當時光海君朝의 조정에서 勢力을 누렸던官僚들은 큰 打擊을입었다.
우리 豊川任氏가 牧使公 以來 約 百年間누렸던 榮華로 갑자기 빛을 잃게 되었다. 光海君은 歷代의 君主가운데 政治力이 大緞히 뛰어난 人物이었다는 것이歷史學者들의一致된 評價이다. 임진왜란 때는 世子로써 後方事態를 明敏하게處理하였으며 王位에 登極 後에는 日本 國과의 修交를 再開하고 新興 滿洲族인 後金의; 누루하치 (淸太祖)와 明나라와의政權교체時期에 지혜롭게 대처하여 國際的인 마찰을 피해나갔으며 國內的으로 戰後復舊事業을 착실하게 遂行하였다. 그러나 執權勢力은 그 탁월한 業績을 一切無視하고 宮中에서 일어난 倫理的인 問題를내세워 惡名을 씌웠으며 그를 섬기던 官僚까지 追放시켰다. 이것이 우리가 悲運을 맞게 된 重要한 原因이며 契機였다. 그 混亂期에 公의 祖父 禮判公과 伯父 錫後 및 仲父 慶後가 거의 同時에 逝去하신 悲運속에 公께서는 지금으로부터 約 三百七十年 前에지금의 仁川市西區深谷洞으로 落鄕하셨다 그 후 後孫들은 文學으로 先代를 계승하였지만 勢力圈과는 먼 거리에서 지내고 살아왔다. 오늘날 우리後孫들로써는 새로운 감회와 회한의 情을 禁할 수 없다. 그러나 歲月은 어느덧 王祖의 時代가 지나갔고, 民主主義時代가 到來했으며, 우리들의 마음의 故鄕이며 先祖들께서 永眠하신 琢玉峯 기슭에도 開發의 물결이 밀려와 後孫들은 부득이 苦心 끝에 一九九六年 三月二十九日 仁川市 江華郡 양사면 인화리 山 三十八番地二號로 송구스러운 마음을禁치못하며 移葬을 모셨다. 그 後 後孫들은 聲援과 精誠으로 石物과 公의 墓碑를 建立하게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하며 깊은 想念에 잠겨본다.先祖들이 家門을 中興시킨 以來찬란했던時節의 降盛을 다시 한 번 우러러보고 回想하니 感慨가無量하다.

                 一九九六年 丙子 十一月 日
                       後孫 碩淳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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