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관리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20-07-06 (월)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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豊川任公 諱國老 神道碑銘幷序


 


▲ 풍천임씨 15世 이조판서 任國老 神道碑

 朝鮮國宣祖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經筵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觀象監事世子師輔國崇祿大夫行吏曹判書任公神道碑幷序  

故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經筵輔國崇祿大夫行吏曹判書任公國老竹塢鮐叟이며 豐川人이라 先考贈資憲大夫吏曹判書通政大夫行楊州牧使諱尹께서 先妣貞夫人 安東權氏 倉守四傑女하여 生二男 一女두셨으니 長子 廷老慈山郡守次子國老이시며 李應麟에게 出嫁하였다. 께서는 一五三七年 丁酉年出生하여 어려서부터 총명 顈悟하였고 ,八歲에 능히 를지어 사람들이 많이 傳誦하였다. 二十五歲生員 進士兩試合格하고 다음 해에 文科別試丙科及第하여 大小官職歷任하고 一五七五年正言으로 되었으나 어머니가 역병에 걸려 至極精誠으로 侍湯하여 병이 나으셨다. 그해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 水原府使를 자원해서 나갔다 겨울에 아버지가 得病하여 집에서 간호하던 중 臺諫職務를 오랫동안 비웠다고 탄핵하여 罷職되었다. 그리고 곧 을 당하여 三年 동안 侍墓를 살았으니 그 孝誠至極하셨다. 一五八二年 全羅道觀察使 一五八五年 都承旨 一五八七年 大司憲이 되었다. 都憲職四次起用됨은 公明正大하게 하였음이다. 一五九二年 壬辰倭亂 時調度檢察使, 分 戶曹參判으로 三年間 平安道, 黃海道地方에서 活躍하다 一五九四年에 어머니 喪事를 당하여 복을 마치고 一五九七年 丁酉再亂王妃扈從하여 黃海道로가 扈聖功臣으로 忠臣錄登載되었다. 一五九九年 刑曹判書에서 吏曹判書로 옮겼을 時 政丞缺員이 있을 때마다 品階輔國崇祿大夫屢次卜相望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官爵에 욕심이 없었고 財産을 축척 하지 않고 청빈하게 사셨다. 長子 副提學 蒙正定州牧使로 나갔다가 得病하여 수레에 실여 돌아오던 途中 白川에서 死亡하니 學文名筆이 뛰어나 家門棟樑이라 기대가 컸는데 일찍 가니 哀惜傷心 하여 杜門不出하다 得病하여 一六0四年 九月十四日 廣陵 寓舍에서 逝去하시니 享年 六十八歲 이시다. 品階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追贈 되었다. 初葬於 庭坪 先塋 寅坐에 모셨다가 新陵里 卯坐移葬 夫人合葬 지역의 개발로 一九七五年 笠場面 侍壯里 山二番地乙坐再 移葬하였다. 室 貞敬夫人 淸州韓氏寺正 垣의 따님으로 生 三男 一女를 두셨으니 副提學 蒙正禮曹判書 就正校理 守正이다. 三兄弟 모두 科擧及第 하였고 壻 李應祐이다. 蒙正子 通德郞 善後이며 次子開城留守 吉後이다. 就正子 南平縣監 錫後世登이고 次子泰仁縣監 慶後震登起登이요 三子 繕工監直長 光後通德郞 翰登이고 四子 吏曹正郎 興後玄登이다. 守正長子 吏曹正郎 德後通德郞 俊登行登性登이요 次子 四山監役 汝後元登이며 三子貞僖公 有後翊登이다. 四子監役 之後戶曹參判 行益이다 曾孫까지만 쓰고 줄인다. 貞敬夫人 韓氏喪夫 十四年白衣 素食하며 哭泣如初 하고 定州牧使 蒙正 終自稱 罪人이라 何以 見天이라 蒼楹之外不出一步烈行旌閭事載續三綱錄登載되었고 校理 守正三年 廬墓를 살며 哀絰을 한 번도 벗지 않고 侍墓하니 至孝卓行出於天也一鄕士子合聲申 하였고 贈職參判 有後 孝行淸白志操與行誼之實狀誠하여 相臣 李敬輿儒臣所達合有旌閭之典하니 上曰特爲贈職旌閭하라 하시니 五代天官長하고 三傳烈孝旌하니 嗟吾武所似墜落 驩家聲이라 後孫들이여 는 본받을지어다. 貞敬夫人一五三七年 戊戌生으로 一六一七年 丁巳 九月二十六日 別世하시니 享年 八十歲이다.

後孫 國彬 謹書

鵝溪 先生께서 我祖人品處世銘文明鏡과 같아 실으니 大朴散 순후한 풍습이 흩어 젔기에 人務飾 사람들은 형식만을 추구하는데 公葆眞 공은 참다움을 보전한 데다 素厥質 자질을 잘도 간직하였네 早蜚英 일찍이 벼슬길에 나가더니 登八座 팔좌 까지도 올라갔다네 桂聯輝 월계관이 연이어 빛나니 玉無價 값이 없는 보배어라 動必思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하고 謙自知 겸손할 줄도 스스로 알았다네 殿衆趨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길을 確不移 확실치 않으면 옮기지안았네 痛傷明 자식 잃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햇으니 天胡菅 하늘은 어찌 그리 깜깜한지 病沈嬰 병을 앓는 것은 情所鍾 정이 모인 바라네 仕知止 벼슬에 그칠 줄 아는 것을 吉云難 예전에도 어려운 일이라 했는데 遯于野 들녘에 은둔하였으니 公獨安 공은 홀로 편안했었네 歸乘化 죽어서 돌아가니 永無愧 영원토록 부끄럽지 않으리 理不冥 이치가 어둡지 않으니 慶無墜 경사도 실추하는 일이 없으리라

  領議政 李山海 撰

 오랜 세월 竹塢公 神道碑 成碑의 꿈을 仁川 通德郞 翰登公 後孫等巨金喜捨基本이 되었고 宗親 諸位誠金牧使公派宗中支援으로 設立하니 조그만 孝心이라도 그 뜻이 매우 높아 銘名하고 我祖至大功績崇德을 길이 保傳코져 비를 세워 後世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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