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위전기 제위전기
묘위전기 (墓位田記)
풍천 부(風川府)안에 어사대부 의 집터가 아직도 있고 묘위전(墓位田)도 많이 있는데 호로(戶로) 쇠돌(金石)의 이름자도 달아놓았는데 전부터 내려오던 것으로서 춘추제향의 자료로 삼았던 것인데 임진왜란(壬辰倭亂)에 국가문적을 병화에 산실되었고 자손도 각기 먼 곳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본부의 아전과 인민들이 꾀를 합하고 간계를 써서 문서를 변조하여 자기의 물건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추심(推尋)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를 잘 아는 향노(鄕老) 손충좌(孫忠佐) 등에게서 겨우 2결(結)을 찾아서 장령(掌令) 임효달(任孝達)의 호로(戶로) 춘학(春鶴)의 이름자로 옮겨 기록하고는 예전 그대로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으니 자손은 이를 몰라서는 안 되며 이 뒤에 자손들이 공사(公私)간에 이 묘하를 왕래하는 자는 항상 물어서 다시 확인하므로 서 영구히 망실하는 우환이 있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제위전기 (祭位田記)
풍천 도곡의 제위전은 九복(卜) 八속(束)이다. 선(善)자는 논이 七두(斗) 五승락(升落)이고 밭이 하루갈이 (一日耕)다.
정미 년(정조11년)에 비를 세우고 단을 설치 할 때 후손 해주판관(海州判官) 희후(希厚)가 갖추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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