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록
ㆍ작성자 청암
ㆍ작성일 2016-07-21 (목)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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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 6世 어사대부 임주(任澍) 사적


6 世 임 주(任 澍)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

옛 족보에 전해 내려오기를 [공의부조(父祖) 이상 5대는 모두 중국 소흥부 자계현(紹興자계현(慈溪縣) 출신이었는데 공이 원(元)나라 때 원나라의 공주(公主)가 고려왕실로 시집올 때에 모시고 나와서 처음으로 고려에 들어왔으며, 고의 벼슬은 어사대부(御史大夫)라고도 하며 또는 조정대부(朝靖大夫)의 계품으로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 으로 있다가 치사(致仕)하였다 고도 기록되었고 실(室)은 창덕 진씨(昌德陳氏)인데 주부동정(主簿同正) 홍도(弘道)의 딸이라고 되어 있으며 무덤은 송화군 상리면 신성동에 있다. 그런대 공이 처음으로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말에 대하여는 과거의 학자들도 의문내지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져왔다. 공의사적이 역사에는 전혀 실린 곳이 없고 경주 불국사(慶州佛國寺)에서 발견된 경상도관찰사선생안(慶尙道觀察使先生案) 곧 역대로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사람의 이름과 그 재임기간을 기록한 책)에 고려 충렬왕(忠烈王)9년(1283)년에 경상도 추동등 안찰사(慶尙道秋冬等按察使)로 왔다는 정확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원나라의 공주가 교려로 시집온 것은 충령왕 이후인 충혜왕(忠惠王)때부터였으니 연대적으로 들어맞지 않는다고 만휴당(萬休堂) 유후(有後)도 이 전설을 배격하였다. 그러나 우리 풍천임씨(豊川任氏)가 문헌에 나타난 것은 공이 처음이었고 과거에도 공을 거의 시조와 같이 생각해 왔었던 것은 사실이요,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공의 아들인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 자송(子松)과 민부전서(民部典書) 子順)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의 묘에는 1642(인조20)년에 10대손인 황해도순찰사(黃海道巡察使) 임 광(任 絖)이 지은 비석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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