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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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16-07-13 (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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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의 관향(貫鄕) 풍천부(豊川府)의 고사(故事)
성(性)의 관향(貫鄕) 풍천부(豊川府)의 고사(故事)
* 풍천부(豊川府) 황해도(黃海道)에 속함 *고사(故事) 여지승람(與地勝覽)에 의함

풍천도호부(豊川都護府)의 건치연혁(建置沿革)본래 고구려(高句麗)의 구을현(仇乙縣)이었는데 고려(高麗)초기에 풍주(豊州)로 고쳤고 성종(成宗)(서기982年~997年)에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킨 것을 현종(顯宗) (서기1010年~1031年) 이 방어사(防禦使)로 고쳤다. 본조(本朝 조선) 태조(太祖) 六年(서기 1397年) 에 비로소 진(鎭)을 설치하고는 병마사(兵馬使)로서 지주사(知州事)를 겸하게 하였던 것을 태종(太宗)13年(서기1413年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처 군(郡)으로 하였다. 그리고는 은율현(殷栗縣)을 병합하여 풍율군(豊栗郡)으로 호칭하다가 얼마 안 되어 이를 혁파하고 각각 구명으로 회복케 하였다. 세종(世宗) 5年 (서기1423年) 에 병마사로 고쳐 첨절제사(僉節制使)로 하였던 것을 예종(睿宗) 원년 (서기 1469년)에 궁중(宮中)의 외조(外祖)의 관향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키고 관원으로 부사(府使).교수(敎授) 가각 1인씩을 두었다.

군명(郡名)은 구을(仇乙). 굴천(屈遷). 풍주(豊州). 서하(西河). 성해(成海).안주(安州)등으로 불러왔다.
지방(地方.구역)은 동쪽으로는 은율현계(殷栗縣界)까지가 25리 이고 남쪽으로는 장연현계(長 淵縣界)까지가 33리, 송화현계(松火)까지가 27리이며, 서쪽으로는 업청강(業淸江)까지10리, 북쪽으로는 허사포(許沙浦)까지 42리이며, 경도(京都.서울)와의 거리(距里)는 562리 이다.

성씨(姓氏)는 본부(本府)의 임(任)씨가 있다.
산천(山川)으로는 사인암(舍人巖)이 본부 동쪽 20리에 있고 박석산(博石山)이 본부 남쪽30리에 있으며 송화현(松禾縣)도 또한 보인다.
인물(人物)로는 고려의 임 주(任澍) 임자송(任子松) 임경유(任景儒) 임군보(任君輔)
본조(本朝.조선) 임원준(任元濬)이 있으며 신증(信證)된 (여지승람 인물에는) 임유겸(任由謙)등이 있다.


        풍천팔경(豊川八景) 제영(題詠)

 서거정(徐居正)의 시서(詩書)에 이르기를 풍천의 산수의 승경(勝景)이야말로 관서(關西)의 으뜸인데 서하군(西河郡) 임공 원준(任元公濬)이 본부의 팔영(八詠)가지고 거정의 시(詩 )를 요구해 왔다.
나는 생각 하건대 옛사람이 이르기를,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에서 온다고 하였다. 대개 땅이 신령(靈)하면 사람이 반드시 걸출하게 되고 사람이 걸출하게 되면 그 땅은 더욱 신령하게 되나니 신야(辛野)의 이윤(伊尹)과 위수(渭水)의 여상(呂尙)과 융중(隆中)의 제갈공명(諸葛孔明)과 엄릉뢰 의 엄 광과 창려(昌藜)의 한퇴지(韓退之)와 기주 의 두자미(杜子美) 와 미산(眉山)의 소자첨 과 부주의 황정견과 제주의 구양수 등은 사람으로 인해 땅이 더욱 신령하게 된 예(例)이다.
그러나 그 걸출이란 반드시 땅에 신령함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임씨가 고려 시중 자송(子松)으로부터 크게 가성(家聲)을 떨쳤고 대대로 그 명예를 이어 왔는데 이제 서하군이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공신에 참여하고 재상에 올랐는데 그 아들 손자까지도 함께 당세에 현달하였으니 그 땅으로 인해 인물 또한 걸출함을 가히알 수 있는지라 나의 비졸함을 헤아리지 않고 팔절 을 써서 그 제영(題詠)의 장본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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